Martin Luther's Ninety Five Theses


교황이 베드로 성당의 건축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면죄부 발행을 남발하자 이에 항의하여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에 대자보를 붙이게 됩니다. 그 대자보가 바로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입니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의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서론 1-7조

1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생활속에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회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조,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하신 말의 뜻은 신부에게 죄를 자백하는 고해성사와는 관련이 없으며 죄를 사면해주는 속죄 의식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3조, 회개는 다만 마음으로 하는 반성뿐 아니라 외적으로 모든 욕정을 죽이는 고행의 노력이 또한 있어야 합니다.

4조, 참된 마음의 반성은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갈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다.

5조, 교황은 자기와 자기 교회가 만든 법을 범한 죄 외에는 그 누구의 죄도 사면할 권한이 없습니다.

6조, 교황에게는 그 누구의 죄도 사면할 권한이 없습니다. 교황은 다만 하나님께서 사면하심을 공포하거나 보증할 뿐입니다. 자기 자신이 사면해주는 권한 범위내에 있는 경우에는 할 수 있겠지만그런 경우에라도 당사자가 원치 않는다면 그 사람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7조, 하나님께서 그 누구가 되었든 그의 죄를 사면하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하나님의 대표인 신부의 지도를 받게 합니다.

연옥에 있는 자의 사면 문제 8-29조

8조, 죄를 해결하는 교회의 법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니 이 법을 이미 죽은 사람에게 적용하면 안됩니다.

9조, 그러므로 교황은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라서 죄에 관련된 법을 행하되 죽은 사람에게는 그 법을 적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10조, 이미 죽은 사람이 연옥에서 겪는 괴로움을 신부가 교회법으로 면하게 해준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지식의 부족에서 나온 것입니다.

11조, 교회의 벌이 연옥의 벌로 변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감독들이 잘 때에 가라지를 뿌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12조, 예전에는 죄를 사하기 전에 교회의 벌 선고를 함으로 참된 회개를 했으니 지금은 죄를 사한 후에 하기 때문에 참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13조,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이 세상에서 받을 벌을 다 받았으며 교회의 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14조, 죽는 사람이 신앙과 자신에 부정한 부분이 있다면 큰 공포를 느끼게 되고 그 부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공포도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15조, 다른 것은 말고 이 공포만으로도 연옥의 고통에 해당됩니다. 이 공포는 절망의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16조, 지옥, 연옥, 천당이 서로 다른 것 같이 마음의 절망도 평안도 또한 각각 다릅니다.

17조, 연옥에 있는 영들에게 있어서 자선이 증가되면 공포가 감소될 것은 사실입니다.

18조, 연옥에 있는 영들이 자선을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이나 성서로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19조,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자신들이 누릴 복을 확신하는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연옥은 사람이 그 곳에서 얼마 동안 속죄고생을 하면 천당으로 올라가는 곳이라고 정의함)

20조, 교황이 사람의 지은 죄를 사한다 하는 것은 자기가 규정한 죄에만 국한 된 것입니다.

21조, 그러므로 누구든지 전도하며 말하기를 교황의 면죄부로 사람이 받을 모든 형벌에서 석방구원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틀린 말입니다.

22조,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들의 죄를 사면할 수 없습니다. 그 영들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 법대로 속죄 행위를 했어야 했습니다.

23조, 만일 어떤 사람의 모든 죄를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권능을 받은 사람은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야 할 것이요 또 그런 사람은 소수의 사람일 것입니다.

24조,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울 좋은 약속을 하는 기만적 사기죄의 적용을 받을 것입니다.

25조, 연옥에 대한 교황의 권세는 교황의 교구내의 모든 감독들도 가질 수 있고 모든 목사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6조, 교황이 영들의 죄를 사함에 있어서 직권으로 하지 않고 공중의 기도에 의하여 하는 것은 올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연옥에서는 교황의 직권도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27조, 그들이(=면죄부 파는 자들이) 전도하기를 돈이 헌금 궤에 쩔렁하고 떨어질 때마다 영혼이 연옥에서 날아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28조, 돈이 그렇게 쩔렁하고 떨어질 때에 탐욕스러운 무리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29조,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구속받기를 원하는지 않는지 누가 알 것입니까? 성셀비니누스와 파셀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의 사면 문제 30-80조

30조, 각 사람이 자기 회개에 대한 진실성도 자신이 알 수가 없는데 자기가 완전한 사죄함을 받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겠습니까?

31조,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 참으로 회개를 하고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32조, 면죄부를 받고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그의 선생은 다같이 영원히 멸망될 것입니다.

33조, 교황이 죄를 사해주는 것이 곧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멀리할 것입니다.

34조, 교황이 죄를 사해주는 것은 사람이 만든 제도에 의한 속죄에 불과합니다.

35조, 사람이 면죄부를 사면 영을 연옥에서 구출한다는 주장은 기독교 교리가 아니며 면죄부는 사람에게는 회개가 필요가 없다고 하는 주장도 기독교 교리가 아닙니다.

36조, 그리스도인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참으로 회개한다면 그는 면죄부가 없어도 구원을 얻어서 고통과 정죄함을 면할 수 있습니다.

37조, 참된 그리스도인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면죄부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사를 다 받을 수 있습니다.

38조, 교황이 죄를 사해주는 것을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내가 이미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이 죄를 사하신다고 공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9조, 죄를 사해주는 효력과 진정한 회개의 필요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조하는 것은 박학다식한 신학자라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40조, 진정한 회개는 형벌 받을 것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그러나 죄 사하는 행위를 함부로 하면 형벌의 형량을 감형하는 것이며 수형법을 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41조, 사도적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은 조심해서 행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이것을 자선 사업보다 더 중요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2조,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면죄부를 사는 것이 자선사업보다 낫다고 교황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3조, 그리스도인이 또 알아야 할 것은 이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꾸어주는 자선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44조, 자선사업을 하면 할수록 사랑이 늘어나고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면죄부를 사면 그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형벌만 면하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45조,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어려운 사람을 보고 돕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서 면죄부를 산다면 그는 교황의 면죄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사는 것입니다.

46조,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큰 부자가 아닌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사는데 돈을 쓰지 말고 자기 집 살림살이에 사용해야 합니다.

47조, 그리스도인의 알아야 할 것은 면죄부 사는 것은 자유로 할 것이고 의무적으로 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48조,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교황이 죄를 사해줄 때에 기도를 요구해야 마땅한 것이지 돈을 요구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49조,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교황이 죄를 사해주는 것은 사람이 그것만을 의지하지 않아야 유익한 것이고 그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잃는다면 이는 극히 해로운 것입니다.

50조,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만일 교황이 목사들의 면죄부에 대한 행동을 안다면 성 베드로 성당이 불에 타 버릴지언정 저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서 그 성당을 짓는 것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51조,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목사들이 면죄부를 가지고 어떻게 하는지 교황이 알게된다면 성 베드로 성당을 팔든지 혹은 자기의 개인 재산으로 면죄부 산 사람들의 낸 돈을 반환해야 할 것입니다.

52조, 면죄부에 교황이나 혹은 어떤 감독이 보증을 선다 하더라고 그것으로서 구원 얻을 가망은 없는 것입니다.

53조, 면죄부를 선전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금지한다면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황의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54조, 교회 설교 시간에 면죄부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같이 길게 한다든지 혹은 더 길게 하면 이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55조, 교황이 죄 사하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죄 사해줄 때에 종 하나만 올리고 행렬도 한번만 해야 합니다. 그 반면에 있어서 복음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복음에는 종 백 개로 울려 전하고 의식도 백 번 해서 전해야 합니다.

56조,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하는 교회의 금고는 교인들에게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57조, 그 금고에 세상 재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만일 있다면 언제든지 다 써야 마땅합니다. 많은 신부들은 보물을 거기에 쌓아 놓기만 하고 있습니다.

58조, 면죄부 금고에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황도 모르게 면죄부가 사람의 마음속에 은혜를 베풀고 십자가의 효력을 나타내고 죽음과 지옥을 면케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59조, 성 로랜스가 말하기를 교회의 보배는 빈곤한 교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당시에 쓰는 말로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60조, 그리스도의 공로로 교회가 맡은 직권이 곧 교회의 보배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61조, 지금의 형벌내리는 것은 교황의 권력만이 기결죄와 미결죄를 사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62조, 교회의 보배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입니다.

63조, 그러나 그 보배는 하찮게 여겨지고 있으니, 가장 앞에 있어야 할 것이 가장 끝에 가서 서있습니다.

64조, 면죄부 보배는 맨 끝에 있어야 할 것인데, 가장 앞에서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 현 실정입니다.

65조, 복음의 보배는 예로부터 사람을 많이 낚는 그물이었습니다.

66조, 면죄부의 보배는 사람의 재산을 따먹는 것이 되었습니다.

67조, 가장 큰 은혜가 면죄부라고 신부들이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천한 잡것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68조, 면죄부는 하나님 은혜와 십자가 신앙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69조, 감독들과 신부들도 사도의 사면특사를 경건하게 영접할 것입니다.

70조, 그러나 그들이 주의할 것은 이 특사들이 교황의 말을 전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욕망을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71조, 사도가 죄를 사한다는 것을 반대한다면 그 누구라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72조, 한편 면죄부를 선전하는 자의 방종하게 나아감을 반대하는 사람 또한 복을 받을 것입니다.

73조, 면죄부 판매에 기만적 수단을 사용해서 죄사함 하는 행위를 교황이 금하고 있는데 이는 잘하는 일입니다.

74조, 누구든지 죄를 사한다는 명분으로 거룩한 자선의 진리를 기만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교황이 절대로 용납해서 안될 것입니다.

75조, 교황의 죄사함 권한으로 성모에게 범죄함과 같은 것까지 죄사함 할 수 있고 생각한다면 이는 미친 생각입니다.

76조, 교황이 죄를 사하는 것은 죄 중에 제일 경한 죽지 않을 죄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77조, 성 베드로가 교황 이상의 은전을 베풀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 베드로에 대한 큰 모독입니다.

78조, 현 교황이나 혹은 다른 어느 교황이든지 그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 수 있으니 곧 복음의 능력이요 병 고치는 은사라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고전12:9∼)

79조, 교황의 팔에 다른 휘장들과 같이 있는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80조, 이러한 주장을 신도들에게 주입하는 감독, 신부, 신학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평신도로서의 면죄부 반대 81-91조

81조, 죄를 사해주는 것에 대한 패역한 설교에 일반 신자로부터 예민한 질문을 받게되는데 교황의 위신을 꺾이지 않게 하고 대답한다는 것은 유식한 학자라 할지라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82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겠습니까? 만일 교황이 지극히 거룩한 자선주의를 가지고 영들의 가장 큰 요구를 덜어준다면 왜 연옥 전체를 공존하도록 하지 못합니까? 이는 이치에 맞는 당연한 대의 명분입니다. 성당 짓는 데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로 교황이 무수한 영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하면 위에 말한 대의명분을 넉넉히 실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83조, 영들이 연옥에서 구출되어 온다면 왜 그런 영들을 위하여 장례미사나 추도미사를 드려야 합니까? 그런 미사를 위하여 기부한 돈은 그런 미사가 소용없으니 돌려보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84조,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하나님의 원수 된 사람이라도 돈만 내면 연옥에 있는 영을 구출하는 은혜를 베풉니다. 연옥에 있는 그 영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왜 돈을 받지 않고 순전히 은혜로 그런 영을 구출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교황에게 주어진 새로운 은혜입니까?

85조, 회개한 교역자들 중에 이미 죽은 지가 오래 되어 그들의 죄가 사해진 줄 아는데 그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들을 위하여 면죄부를 돈주고 사서 그들을 구출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86조, 오늘 교황은 부자 중에서도 큰 부자인데 자신의 돈을 들여 성당을 짓지 않고 왜 가난한 신자들의 돈을 거두어서 지으려 합니까?

87조, 참으로 회개하고 온전하게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교황은 왜 죄사함 받으라고 합니까?

88조, 만일 교황이 하루 한번뿐 아니라 백 번씩이라도 진실한 신자들에게 죄사함의 은전을 베푼다면 교회에 매우 큰 유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89조, 교황의 목적이 영을 구원하는 것이요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이전에 내린 면죄부가 왜 무효가 됩니까? 그것이 면죄부와 같이 동일하게 죄를 면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90조, 평신자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데 이론적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누르려고만 한다면 교회는 그들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면죄부를 억지로 강요하는 자들을 불결하게 여길 것입니다.

91조, 만일 죄사함에 대하여 교황이 옳은 정신을 가지고 설교한다면 이런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판매 동기의 잘못 지적 92-95조

92조, "평안할지어다 평안할지어다" 하고도 평안이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들을 그리스도인들은 다 물리칠 것입니다.

93조,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라 십자가라"하면서 십자가가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94조, 그리스도인들은 저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만을 고통과 죽음과 지옥을 통과해서라도 따를 것입니다.

95조, 그러므로 많은 고난을 겪고 천국에 들어갈 생각을 해야하며 안전하게 간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